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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의 낙서장/어지러운 국제 사회 야야기

소련의 자동화 핵전쟁 수행기계 죽음의 손을 알아보자

by MinorityOpinion 201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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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국제정치에서 갖는 의의를 알아보자

지난번에 핵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핵무기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하였다.

 

핵무기는 상호확증 파괴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이를 쉽게 설명하면

 

내가 상대방의 핵을 막을 수는 없어도 너를 핵으로 죽여버릴 수는 있다. 서로가 서로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상호확증 파괴의 예로 소련의 자동화 핵전쟁 수행기 시스테마 페리메트르(죽음의 손)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리에게 냉전시기 소련에 대한 인상을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악의 제국? 국가적으로 이루어진 공산주의 실험체? 유일하게 미국과 대등하게 맞써 싸운 집단? 아니면 별 관심이 없으니 모른다 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소련의 힘으로 화자되고 했던 물량빨로 밀어 붙이는 기갑전력등이 아닌 비대칭전력 대표적으로 '핵' 그중에서도 무인화 핵전쟁수행기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2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점령지

소련의 핵개발

 

소련의 핵개발은 국가의 존망이 위협 받던 독소전 와중인 1942년부터 진행중이었다. 소련은 독소전 이전부터 전세계의 공산주의자 커넥션인 소위 '제 3인터네셔녈'과의 연계와 악명높은 KGB의 전신기관인 NKVD의 요원들을 세계 각지에 배치 함으로써 막강한 정보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소련의 스파이망은 당시의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에 걸친 광범위하고 수준높은 첩보망이었다. 당시 소련의 첩보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던 NKVD는 특히 배신자 처단과 같은 뛰어난 공작 능력으로 유명하다.

 

이 NKVD 요원들이 바로 스탈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해 멕시코로 달아난 트로츠키 계파의 수장, 레온 트로츠키 (Leon Trotsky)를 1940년에 설산 등반용 대못으로 잔혹하게 살해한 그 주인공이며, NKVD 내부의 배신자 월터 크리비츠키 (Walter Krivitsky)를 미국의 심장, 워싱턴 D.C의 자택에서 살해한 집단이다. 이러한 소련의 첩보망은 세계 구석구석 퍼져있어 가히 소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이후 냉전기까지 이어져 KGB라는 첩보 신화를 쓰게 된다.

 

레온 트로츠키 (Leon Trotsky) 

 

그리고 이 NKVD 네트워크를 통해 소련은 그 폐쇄성이 무색하게 온갖 고급 정보를 획득 할 수 있었는데, 이 고급 정보들은 분류를 가리지 않아 경제 동향, 유출에 성공한 외교문서 사본부터 핵물리학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1942년 4월 경, 소련의 핵물리학자 게오르기 플료로프 (Georgy Flyorov)는 스탈린에게 '서방국가들이 핵물리학 논문들을 최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최근 서구 물리학계의 기묘한 행보에 관해 상당한 분량의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이 편지의 내용은 서구권의 당시 이론적으로 개발이 가능함이 증명된 핵무기 개발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의 내용에 스탈린은 상당한 자극을 받아, NKVD를 이용해 핵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NKVD의 총수 이면서 변태성욕과 소아성애편력으로 유명한, 라프렌티 베리야 (Lavrentiy Beria)를 핵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임명하며 핵개발을 명한다.

 

1945년엔 미국에서 NKVD요원을 통해 원자폭탄의 설계도를 입수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받았고, 소련의 오펜하이머 박사라는 평을 듣는 이고르 쿠르챠토프 (Igor Kurchatov)와 같은 우수한 기초과학 기술진, 굴라그에 수용된 엄청난 규모의 노예노동력, 그리고 연구진을 향한 끊임없는 총살위협 - 실제로 스탈린은 만약 핵실험이 실패할시 연구진 전원을 총살할 생각이었다, 에 힘입어 소련은 1949년 8월 29일, 핵실험에 성공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서구권을 따라 잡는 것을 목표로 한 핵개발이었기에, 핵폭발의 파괴력은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리틀보이와 동급의 위력이었다.

 

'맙소사 서기장 동무!' - 베리야.

 

그리고, 핵실험의 성공 이후, 미국은 더 이상 독자적 핵보유국이 아니었고, 냉전의 근간이 되는 지대한 공포이자 지금껏 인류가 서로를 날려버리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던 이유인 '상호확증파괴'의 공포가 드디어 세상에 태동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인류가 인류 전체를 날려버리기 위한 핵전력을 보유하는 데에는 약 2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인류는 비로소 종족 보전을 판돈으로 건 도박판에 발을 들인 것이다. 바로 이 시점부터 너도나도 인류를 판돈으로 걸기 시작하는 핵확산 도미노 현상이 시작되었다.

 

 

이 시점 이후로 30년 간, 미국과 소련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주도의 핵감축협상이 시작될때까지 끊임없이 핵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본격적인 핵 경쟁의 시작의 배경

독소전이 승전으로 끝나고, 소련은 당당히 최대 승전국의 상석을 꿰어 찼음에도 소련은 끊임없이 반쯤은 러시아 유구한 전통인 외국인 공포와 피해망상에서 기인하는, 안보위협에 시달렸다. 공산주의를 단번에 세계의 절반으로 확산 시키는데 성공시킨 잭팟이자 영광스런 어머니 러시아의 승리는 진정한 승리라기보다는 피로스의 승리처럼 보였다. 소련은 독소전을 겪으며 학자에 따라 최소 2천 5백만, 최대 4천만까지로 추산하는 인명피해를 입었고, 러시아의 전통적 중심지이던 유럽 러시아의 대부분이 전쟁의 포화에 파괴되어 극도의 피폐함에 시달리게 되었다.

 

편집증에 시달리는 소련 지도부를 불안케 하는 것은 이러한 내부적 피폐함 뿐만이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그 어느나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적들은 항상 저 초원 너머 지평선에서 몰려와 마을을 불살랐다. 그것이 러시아 특유의 폐쇄성과 외국인 혐오의 근간이 되었고, 외국인은 재앙을 가져왔다. 소련이 보는 서구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구는 소련의 체제적 순수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던지는 대상이었고, 소련의 혁명 붕괴를 위해 음모를 꾸미는 악의만을 가진 적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련의 공포와 달리, 아이러닉하게도 서구권의 전통 깊은 '러시아 공포'는 (러시아 공포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러시아의 강대함과 야만성에 대한 서구권의 유서 깊은 공포이다) 이후 동베를린 시위의 무력 진압, 체코슬로바키아 선거 개입, 폴란드 수장의 숙청, 부다페스트 사태 등의 역사적 사건으로 증명되는 소련이 유럽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현실이 비로소 서구에 실감되기 시작하자, 서구는 소련 못지않은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구가 보는 소련은 무한한 인적 자원과 군사 자원을 가진, 야만적인 독재자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였고, 서구가 보는 서구는 전쟁으로 완전히 황폐화된 폐허였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가 강경책으로 서구의 역량을 시험해보려 했던 스탈린의 베를린 봉쇄, 그에 상응하는 서구의 NATO 결성, 이후 대립의 가속화로 확정된 서독과 동독의 분단으로 공포와 불신이 극대화 되고, 소련이 500만에 이르는 군대를 동원해제 않은것 같다는 미국 외교가의 오판과 주 소련 미국 대사의 소련에 대한 공포로 가득찬 전보가 대중 앞에 공개 되었을 때, 피해망상은 곧 실체를 가진 공포증이 되었다.

 

 

소련 특유의 비밀성과 폐쇄성은 서구권의 정보 부족으로 직결되어, 서구가 소련은 전쟁 막바지에 동원 했던 500만을 아직도 동원 해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오판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 사실 소련은 동원 해제 수순을 차근 차근 밟아 당시 소련이 즉시 동원 가능한 사단 수는 약 100사단 남짓이었다. 전시에 1,300만을 동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감축이었다 독소전의 전훈에서 기인한 기계화의 영향이 크기도 했다.

 

1949년 NATO 결성 당시 서유럽에 존재하는 서유럽권 국가들이 동원 가능했던 사단은 채 20개 사단 규모도 되지 않았다. 이는 심각한 안보 공백이었는데 지금은 서독일이 되어버린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공산권과 국경을 접하는 국가들 전체를 고작 20만 남짓되는 병력으로 방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서유럽 재건 경제원조 계획인 마셜 플랜(Marshall Plan)과 같은 계획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전까지는 서유럽은 사실상의 빈땅과 다름 없었다. 소련이 대대적 군사적 모험을 벌이기로 결심한다면 1주 이내에 라인강을 넘을수 있었을 규모의 거대한 병력 차이였던 것이다.

 

이는 후에 소련의 첫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재무장을 허락 받게 되는 서독이 49년 이전에는 50,000명 규모의 경무장한 경찰대나 소총부대가 국토 전체를 방위하고 있었을만큼 그 상태가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이러한 공포가 서유럽을 가득 메운 가운데,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마침내 핵개발에 성공했다. 핵경쟁의 신호탄이자,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섬광이었다.

 

핵경쟁, 그 위험한 게임

사실 1970년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소련은 미국과의 핵경쟁에 있어 압도적 열세에 있었다. 흔히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chev)의 쿠바 핵미사일 위기로 화자되곤 하던 1960년대의 핵공포도 사실상 소련의 뻥포에 가까웠다. 소련의 핵위협은 흐루쇼프의 모험주의적 외교관, 그리고 서구권의 비이성적 러시아 공포에서 비롯된 망상이자 허황된 이미지였다.

 

이는 당시 소련과 미국이 핵전쟁을 벌인다면 소련의 압도적 패배로 끝날 정도의 전력차였다. 당시 소련은 ICBM 숫자에서도 미국에 거의 17:1의 비율로 열세였으며, 미국 본토 상공에 '귀환'이 아닌 그저 '닿을'수 있는 폭격기의 숫자도 미국이 소련의 본토에 핵탄두를 뿌려댈수 있는 폭격기의 숫자의 1/5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핵탄두의 절대수량도, 지정학적인 위치도 미국에게 절대 열세에 놓여 있었다 - 미국은 유럽에서 소련 본토에 폭격기와 핵미사일의 투사가 가능했지만 소련은 그렇지 않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기원도 이러한 전력차를 극복하기 위한, 혹은 최소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한 소련의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험주의 외교정책이 불러온 쿠바 미사일 위기는 케네디의 3차세계대전까지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무산되었고 - 그로 인해 흐루쇼프가 실각하자, 그의 뒤를 이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Leonid Breznhev)는 핵전력의 대대적 확충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70년대의 일이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소련이 미국과의 핵경쟁에 있어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은 여전히 핵무기의 신뢰성과 타격 정밀성 등에서 앞서 있었으나, 더 이상 핵전쟁의 수행 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상호확증파괴, 짧게 줄여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이 둥지를 튼 것이다.

 

그리고, 이 브레즈네프의 남다른 핵사랑이 바로 이 글이 다루려 하는 '지구 최후의 날 기계'를 잉태하게 된다.

 

지구 최후의 날 기계, 그리고 죽음의 손

평화수호자(Peacekeeper) 다탄두 핵미사일의 대기 재진입 장면

 

지구 최후의 날 기계는 지금 독자들이 생각하고 있을 어떤 하나의 통합된 기계가 아니라, 이러한 통합 시스템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자 메커니즘이며 행동 강령이다. 이러한 행동 강령을 둠즈데이 시나리오라고 하는데, 이 둠즈데이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모든 핵기구를 지구 최후의 날 기계라고 통칭한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도 소개되었으니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

 

픽션 속이 아니라 현실에 실존하는 지구 최후의 날 기계는 이 글이 다루고 있는 러시아의 '죽음의 손' (Dead Hand)라고 불리우는 핵무기 통합 관리 시스템이 유일하다. 재미있게도 이 시스템은 냉전기 핵공포를 농도 진한 블랙 휴머로 비꼬는 영화인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 나오는 그 지구 최후의 날 기계와 그 용도와 기능에 있어 근본적 차이가 없다. 시스템은 영어로는 Perimeter 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브레즈네프 집권 시기인 1970년 중반 경에 그 계획이 입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스템은 러시아의 통합 핵무기 관리 체계이자, 조국의 마지막 보루이면서, 죽음의 화신이기도 하다.

 

1984년부터 가동된 것으로 추정되는 '죽음의 손'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소름돋는 독트린을 가지고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복수'. 냉전기간에는 그저 도시전설이나 공상과학을 좋아하는 괴짜들이나 신봉하는 프로파간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왔지만,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대량으로 풀린 소련의 기밀 문서를 조사한 결과 실체로써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Dead Hand (Russian: Система «Периметр», Systema "Perimetr"), known also as Perimeter, is a Cold-War-era nuclear-control system used by the Soviet Union. General speculation from insiders alleges that the system remains in use in post-Soviet Russia. An example of fail-deadly deterrence, it can automatically trigger the launch of the Russi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ICBMs) if a nuclear strike is detected by seismic, light, radioactivity and overpressure sensors. By most accounts, it is normally switched off and is supposed to be activated during dangerous crises only. However, it is said to remain fully functional and able to serve its purpose whenever needed.

Literally, "Perimeter System"
Valery E. Yarynich (20 September 2004). "C3: Nuclear Command, Control Cooperation". Air & Space Power Journal. Retrieved 25 May 2015.
"The Origin of Buzzer Monolyths, The Soviet Nuclear Defense System, and The Myth of the Dead Hand". The NSRIC.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 February 2015. Retrieved 30 January2015.

 

냉전시기에 개발된 소련의 핵통제 시스템, 죽음의 손. 시스템의 부팅은 전쟁위기와 같은 위기상황에 부팅되어 그 역할을 다함. 시스템이 꺼져 있는 동안에도 항시 지진, 기압, 빛, 방사능 센서는 작동한다. 만일 지진계, 기압계, 방사능 측정기, 일조량 센서 등에서 핵폭발을 탐지할 경우, 자동적으로 시스템에 연동된 모든 대륙간탄도탄 미사일을 설정된 목표를 향해 미국과 그 동맹국, 날려보내는 시스템이다.

 

죽음의 손은 인간이 시스템을 부팅하지 않더라도 항시 작동한다. 살을 보태자면, 만약 센서가 러시아 국토에서 허가되지 않은 핵폭발을 감지할 경우, 시스템은 스스로를 부팅하고 크렘린, 각지의 군기지들, 백업 벙커들과의 통신연결 회선을 자동으로 확인하게 된다. 만약 이 경우에 어떠한 통신응답이 있을 경우, 컴퓨터는 복잡한 통상 핵무기 발사절차 및 지휘체계를 완전히 건너 뛰고 통제권 순서에 있어 가장 상위에 있는 기지의 지휘관에게 모든 핵전쟁 지휘권을 넘게 된다. 만약 해당 기지의 지휘관이 발사를 결정할 경우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핵무기를 목표를 향해 일제히 발사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기지에서 응답이 없거나, 지휘권을 인수한 기지의 지휘관이 사망했다고 컴퓨터가 판단할 경우,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핵무기 발사 권한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고 컴퓨터가 핵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시스템은 남아있는 미사일 잔량을 모두 미국의 도시와 전략목표로 날려보냄과 동시에 시스템은 세계 각지 해저에 잠들어 있는 전략핵잠에게도 미사일의 발사를 명령하게 된다. 방사능으로 오염 된, 녹아내린 모래들이 변한 유리 조각이 지천에 널린 죽음의 땅에서 미사일들이 시스템의 명령에 따라 솟아 나와 폐허로 변한 조국 러시아의 마지막 복수를 위해 날아가는 것이다.

 

시스템이 정상 작동할 경우 1980년대 말 기준으로 45,000여발의 핵탄두가 미국과 그 주요 동맹국에 투사된다.

 

http://www.wired.com/politics/security/magazine/17-10/mf_deadhand?currentPage=all

 

Inside the Apocalyptic Soviet Doomsday Machine

The technical name was Perimeter, but some called it Mertvaya Ruka, Dead Hand.

www.wired.com

소련의 퇴역 대령의 증언. 죽음의 손은 실제로 존재했으며, 상당히 논리적으로, 기계적으로 진보되었던 물건이다.

 

 

http://www.wired.com/wiredscience/2007/09/soviet-doomsday/

 

Soviet Doomsday Device Still Armed and Ready

The Soviet doomsday device — a giant cobalt bomb rigged to explode were Russia ever nuked, rendering the earth’s surface uninhabitable — gained fictional fame in Dr. Strangelove. However, P.D. Smith’s Doomsday Men, available in the UK and due for stateside

www.wired.com

 

이건 현재까지 죽음의 손이 작동 중이라는 기사.

 

냉전의 상호 확증 파괴 (Mutual Assured Destruction)과 같은 핵의 억지력과 공포에 기반한 논리는 이러한 완전 자동화 핵발사 시스템과 같은 괴물을 잉태하였다.

 

 

반다 : UVB-76, The Buzze

 

 

UVB-76은 약 1980년부터 특정 주파수로 러시아에서 발신되고 있는 정체불명의 방송이다. 통칭 'The Buzzer'라고 불리우는데, 그저 2초 간격으로 반복적인 기계음만을 송출하는 그리고 수십 년의 송출 기간 동안 몇 차례 인간의 목소리가 방송에 잡힌,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의 벙커에서 송출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방송이다. 방송이후 현재까지 약 6회정도의 음성만이 들렸을뿐, 그 이외에는 항시 괴이한 버저음만을 송출중인 방송이다.

 

하지만 이 버저음의 송출지가 모스크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해 이 방송이 죽음의 손을 구성하는 시스템중 일부냐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즉 '데드맨 스위치' 로써, 일정 시간 이상 이 방송의 송출이 끊기게 된다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수도 모스크바의 괴멸을 상정하거나, 혹은 그 괴멸 상정 가능성의 일부로 취급되는 방송이 아니냐는 것이 그 의견.

 

하지만, 영국의 한 뉴스에 따르면 2009년 이미 이 송신소는 폐지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됨에 따라 건물을 모두 헐어 버렸다는 것인데, 기묘하게도 계속해서 방송은 송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송신소는 이미 폐지된 지 4년이 넘었다. 하지만 어찌해서 이곳에서 방송이 나오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다른 벙커가 주파수를 넘겨 받은 것일까?

 

 

 

 

 

종막 : 현재

 

"수천개의 태양의 휘황찬란함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이는 전능한 자의 광채와도 같으리...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핵개발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공포스럽게도 이 괴물은 현재까지도 정상 작동하고 있는 러시아 최후의 보루이자, 인류의 공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불안정하다. 개인 하나하나의 평화로운 일상은 기적과도 같다. 냉전의 시작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 약 알려진것만 1,500회의 우발적 핵전쟁이 인간에 의해, 혹은 기계적 오류에 의해 일어날뻔 했으며, 그중 약 200회는 실제로 핵무기의 발사 직전까지 시퀀스가 진행되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선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핵강국들이 핵무기를 감축한다고 한다. 인류의 존속을 걸고 하는 도박에서 판돈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매우 고무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으나, 아직까지 죽음의 손은 그 죽음의 손길을 지구 방방곡곡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고, 핵무기는 여전히 인류 전체를 몇 번씩 멸망시키고 남을 만큼 차고 넘치며 인류는 여전히 너무나도 불안정하고도 너무나도 파괴적인,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전면 핵전쟁의 현저히 위협이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냉전기와 같은 인류를 걸고 행하는 전면핵전쟁은 아닐지언정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핵무기의 유출 공포 및 핵테러의 실제적 위협은 그 어느날보다 크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의 핵보유는 필요악으로 기능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북한 등지의 확고하지 않은 핵 통제권과 정치적 극단성은 핵의 공포가 망령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으로 존재케 한다.

 

체제 불안정과 외세의 위협에 부딪힌 많은 독재국가들이 핵무기를 옵션으로 선택한다. 북한이 그랬고, 남아공이 그랬으며, 미얀마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2014년에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다고 한다. 탈레반과 미국 측의 평화 협상이 한창이다. 과연 미군 철수 뒤 파키스탄 내 탈레반 준동이 멈출지는 의문스러운 일이다. 파키스탄 북부는 여러 정치무장집단의 각축장과 테러 조직들의 근거지가 된지 오래다. 불과 몇 년 전에는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육군 본부를 12시간 넘게 점거한 사건도 있었다. 

 

과연 핵 통제권이란 것은 확고할까? 당장 파키스탄은 카오스 상태에 빠져 있고, 소련 붕괴 당시에는 약 100여개의 핵배낭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핵배낭 하나가 우즈베키스탄 촌구석의 서랍 안에 잠자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체첸계열, 혹은 알카에다 계열의 테러 조직이 우연찮게 판도라의 상자를 입수할 개연성이 전혀 없을까? 핵무기 절대 수량은 줄었음에도 핵무기의 실제적 위협은 어느때보다 큰 지금, 과연 우리가 지금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는 숙고해봐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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